산티아고 순례길, 그 다섯째 날
-2018년 5월 1일-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아예기Ayegui까지, 24Km
순례자들의 마을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잘 먹고 잘 쉬고 잘 잤다.
숙소는 2층 침대로 빼곡하게 채워졌지만, 부엌이 갖추어져 있어 내가 빠져든 멋진 젊은 친구들과 맛나게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새벽 여섯,시에 일반적으로 숙소의 불을 켠다.
성질 급한 사람 또는 일찍 새벽길을 걷는 사람은 뽀시락 뽀시락 소리를 내며 여섯 시 전에 배낭을 꾸린다.
오늘만큼은 조금은 더 자고 싶어 하는 아직 자고 있는 이들을 위해 여섯 시가 지났어도 길 떠나는 준비를 다들 최대한 소리를 줄여서 한다. 짐을 몽땅 바깥으로 들고나와 복도에서 배낭을 꾸리기도 한다. 나중에는 이를 핑계로 아침 세수를 자주 생략했다. 매일의 면도 또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 되었다.
순례자들이 길을 떠나는 이른 시간 아직 마을의 중앙 광장은 아직도 조용하다.
마을이 끝나는 곳, 아르가 강 위에 일곱개의 아치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여왕의 다리가 있다. 푸엔테는 다리라는 뜻이고 라 레이나는 여왕이라는 뜻이다. 추측하건대 여왕, 라 레이나는 성모님이 아닐까 한다. 11세기에 세워진 석조 다리라고 하니까 천 년을 산 다리 위를 나는 지금 건너고 있다. 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순례자가 건넜을까? 하지만 그 어떤 순례자도 똑같은 순례자는 없다.
뒤돌아본 푸엔테 라 레이나
성모님의 달, 오월 첫날인데도 아직 새벽은 춥다.
순례자들은 두 손을 주머니 속에 깊이 넣고 움츠린 어깨로 걷는다. 몸과 마음을 조율하며 서서히 오늘도 순례자가 된다.
햇빛 좋은 날 시골 마을 마당 빨랫줄이 생각난다.
사람이 산다. 나와 같은 사람이 여기도 산다.
큰 자동차 도로 곁을 따라 한참 동안 오르막을 올랐다.
십자가가 생각나는지 철조망 틈틈마다 순례자들이 십자가 하나씩 남겨 놓았다.
"나를 따르려거든 각자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세요."
지고 온 십자가를 내려놓음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의식이다.
나도 어설픈 십자가 하나 남겼다.
한 시간 더 계속 오르막을 올라와 만난 첫 마을 마녜루Maneru
그냥 지나갔다.
마녜루에서 시라우키Sirauqui 가는 길
사진 찍는 포인트
이쯤에서부터 시라우카 마을 초입에 이르는 동안 다들 사진을 찍는다.
자기 주머니에는 나와 동갑인 동생, 얼마 전 혈액암으로 하느님께 먼저 간 동생의 재가 있다고 같이 순례한다고 한 그다.
바로 앞에 파란 배낭을 멘 친구가 그의 딸 Anna다.
순례길 동안 종종 그들을 만났다.
그도 여기서 한 컷 중!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채워지며
산 위의 마을과 순례자들의 길을 햇살로 유난히 밝게 비춘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산 위의 마을,
등경 위의 등불이다.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 복음 5장 13절에서 16절
이 길 위에 서면,
산 위의 마을 시라우키 마을을 향해 가는 이 길 위에 서면
예수님의 말씀이 저절로 들려온다.
산 이들을 위한 산 위의 마을 옆 동산에는 죽은 이들이 더 평화롭게 산 이들을 기억한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산 이가, 순례자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로마 시대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시라우키 마을은 방어적 기능이 곳곳에 스며 있다.
오르막길에 있는 집들의 대문 곁, 창문 아래에는 돌로 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아무 말 없이 나는 내 마음의 자리를 오르막 내리막을 걷는 이에게 앉아 좀 쉬라고 한 켠을 내어 주고 있는가?
문을 닫아버리면 이 골목과 저 골목은 단절된다.
오래된 집과
오래된 포도나무와
그에 비해 젊은 사람이 묘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저 포도나무는 몇 해나 되었어요?
뭐라고, 뭐라고?
내 스페인어 탓인가 아저씨 귀 탓인가?
두 사람의 목소리는 골목 안 로마 시대로 사라진다.
넓은 왼쪽 길을 두고 순례자들은 다들 오른쪽 길로 간다.
아마 저 다리 때문이겠지.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걸까?
쉬어가라고
아기자기 꾸며 놓았다.
그럼 쉬어가야지!
비야투에르타Villatuerta 마을을 앞에 둔 아름다운 풍경 안으로 '폴란드 전차병'이 저기 간다.
내가 지은 별명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지었다.
성모 승천 성당 Iglesia de La Asuncion과 성 베레문도.
비야투에르타 사람들과 옆 마을 아레야노Arellano 사람들은 서로 이라체 수도원장이었던 성 베레문도의 고향이 자기 마을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5년마다 두 마을이 번갈아 가며 성인의 유해를 보관한다.
북쪽의 톨레도라고도 불리는 에스테야Estella 초입.
에스테야는 1090년 산초 라미레스 왕이 에가 강가에 세운 계획 도시로 바스크인, 유대인, 프랑스인 등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았다. 상업과 수공업이 발전한 부유한 도시였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매우 중요한 도시다.
에스테야로 들어오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축물인 거룩한 무덤 성당Iglesia del Santo Sepulcro은 아름다운 파사드가 있는 13세기의 고딕 양식 성당이다. 라틴어 sepúlcrum은 무덤이라는 뜻이다.
나는 반했다.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여기서도 보고 저기서도 봤다.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았다.
아래층은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식탁에는 빵과 포도주가 있고 요한 사도가 예수님 오른 품에 비스듬히 안겨 있고 예수님은 오른편 사도의 입에 빵을 먹여주고 있다.
꼭대기 층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장면이다. 성모님과 성요한이 분명한 모습으로 있고, 두 명의 로마 병사와 두 명의 죄수가 십자가에 달려 있다.
중간층 왼편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세 명의 마리아와 중앙은 저승에까지 내려가신 예수님, 그리고 오른편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앞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다.
그 위로는 여섯 천사가 십자가와 나팔을 들고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제일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께서 계신다.
제일 아래는 이 모든 장면을 유대인을 상징하는 두 사람이 떠받치고 있다.
파사드 양옆, 열두 명의 사도가 자리하고 있는가 보다.
거룩한 무덤 성당, 성묘 성당의 아름다움이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다리는 마을의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면서 내 편과 네 편이 허물어지고 서로 우리 편이 된다.
에스테야는 강과 평행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이 잠들면 강물은 그때서야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별이라는 뜻의 에스테야의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도시의 중심 거리다.
에스테야에서 2Km 좀 더 가서, 아예기Ayegui에 머물렀다.
저기 아래로 에스테야가 보이는 전망 좋은 휴게실 겸 식당에서 우리의 요리사 진동님의 환상적인 제육볶음을 먹었다.
순례 동안 우리들의 입에서는 제육볶음의 감동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진동!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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