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iago de Compostela/산티아고 아!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 그 셋째 날- 2018년 4월 29일 -

하늘바다angelo 2019. 5. 18. 19:53


산티아고 순례길, 그 셋째 날

- 2018년 4월 29일 -





수비리Zubiri에서 팜플로나Pamplona까지, 20.5Km






새벽하늘이 푸르다 못해 짙푸르다.

어제 건너왔던 라 라비아 다리다.

다리를 건너 왼쪽은 어제 왔던 길이고 오른쪽으로 돌면 낯선 길이다.

밤새 다리 아래로 흘러간 강물을 따라 나도 낯선 길로 접어든다.



사흘째, 적응이 빠른 나는 이미 걷기에도 적응을 한 듯하다.

아직 발에는 무리했다는 흔적이 없다.

이제 겨우 사흘째인데 별소리를 다 한다.

약간 숨을 몰아쉬며 또 하나의 오르막길 끝에 다다랐다.

어제 수비리에서 숙소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저기 저 앞의 마을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고 한다.


앞으로 순례자의 길을 알려 줄 각양각색의 무수히 많은 화살표를 만날 것이다.




어느 동네일까?

이 동네는 어쩌구저쩌구 그래봐야 ... Too Much Information!

집집마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색깔들이다.

동그란 수레바퀴가 달린 저 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단아한 정원을 가꾸는 이 집의 색깔은 평화인가 보다.

순례자들과 한마음이기를 바라는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성 야고보 사도를 통해 평화의 인사를 전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사도 성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이다.

 9세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날 순례길이 생겼다.

산티아고는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성 요한의 형으로 갈릴레아 출신의 어부였다.

영어권에서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로, 프랑스어권에서는 생 자끄(Saint. Jacques)로, 스페인어권에서 산티아고(Santiago)로 불린다.


콤포스텔라는 번역하면 별들의 정원이다.








또 하나의 오르막 끝에 아침 커피 향과 구수한 빵 내음이 잔잔히 깔린 오래된 동네다, 아케레타AKERRETA.

이 집 대문 돌로 된 문설주에는 174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약 270년 전이라는 세월이 새겨져 있다.

30년을 한 세대라 하면 9세대의 이야기가 있는 집이다.




밤새 나보다 앞서간 강물이 저만치 가고 있다.

먼저 가!



수리아인Zuriain 9Km쯤 걸었나보다.

많은 순례자가 길을 멈추고 쉬어 간다.

갈증을 해소하고 출출한 배도 채우고 땀도 식히며 쉬어 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걷던 순례자들이 눈인사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또 다른 순례자에게 조금씩 풀어낸다.




고양이 몇 마리가 순례자의 간식을 지독하게 탐낸다.

한 친구는 끊임없이 곁으로 다가오는 고양이에 기겁한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진동아, 진동아!







앉을 자리와 그늘이 마련되어 있으면 머물러 쉬지 않더라도 마음 따뜻해진다.

배려는 늘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




길이 있고 마을이 나오고 또 길이 있고 마을이 나오고 또 그렇게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무협 소설의 주인공처럼 축지법을 쓴다.




트리니다드 데 아레Trinidad de Arre

트리니다드는 삼위일체라는 뜻이다. 여섯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로마 시대의 다리라고 한다.

이 마을에 삼위일체, 트리니다드 마리스타 수도원이 있다.


저기 다리 위에 앉아 있는 브라질 친구 자스민은 어제 수비리에서 숙소를 찾지 못해 여기까지 택시로 와서 하룻밤을 자고 오늘 새벽 수비리로 되돌아가 다시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그냥 건너뛸 수도 있는데 대단하다.




아레 여기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더 지났다.

아재 개그 한번 해 봤습니다.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

아르가 강Rio Arga 위의 고딕 양식 다리로 순례자들은 이 다리를 건너 팜플로나로 들어간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고,

저 다리만 건너면 된다고 스페인 친구 헤수스 Jesús가 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에게 힘을 전한다.




걷다 보니 어느새 한 무리가 되었다.

16세기부터 팜플로나 지켜 온 성벽, 여기에도 세기를 더하며 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겠지!




팜플로나 성안으로 입성했다.

수말라까레기 문Portal de Zumalacárregui, 프랑스 문이라고도 부르는 이 아치는 순례자들이 팜플로나로 들어오는 문이다




지금까지는 아기자기하던 작은 마을들이었는데 여기는 크다.

자연에 빠져있다 인위 속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많다.




등에 배낭을 메고 한 사람 두 사람 머물 곳을 찾아 들어온다.

두 다리를 네 다리로 만들어 준 스틱과 흙이 짙게 묻은 신발은 정해진 장소에 보관하고

배낭으로 입실 순서를  정하는 줄서기를 한다.

순례자들을 위한 시립 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de Peregrinos – Iglesia de Jesús y Maria

아래의 문장을 보면 1782년에 교구 신학교로 마련된 건물이었나보다.




시간과 함께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든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쉴 수 있다는 여유가 생긴다.

땀 범벅 몸은 씻고

옷가지는 빨고 널고

간편한 옷과 신발로 갈아입고 신고

익숙해진 얼굴들과 함께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선다.

그러면서 점점 더 서로 익숙해진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팜플로나 주교좌 대성당, 성 마리아 대성당La catedral de Santa María이라고도 불린다.






대성당 앞




예뻐서!!!




카페 이루나,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곳

"노인과 바다", 그 노어부의 이름이 산티아고다

흔적을 찾다가

에스프레소 한 잔 홀짝 했다.












여기 어디쯤일까?

중국 식료품점에서 한국 라면을 사서 저녁밥으로 한국 친구들과 감탄을 하며 다들 맛있게 먹었다.

라면은 언제 어디서나 정답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세상 어디에서나




예수성심상을 발코니에 안치한 집








1755년에 시작하여 1760년에 완성된 바로크식 전면부를 간직한 시청Ayuntamiento이다.

매년 7월 6일 시청의 발코니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성 라우렌시오 성당Iglesia de San Lorenzo


내 침대는 복도 제일 끝 아래 칸

부엌과 식당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빨래방과 빨래 건조대가 있는 곳으로 나가는 문이 있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궁시렁 궁시렁 혼자 불만에 차 밤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