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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바우길 1구간 선자령 풍차길(I) 첫번째 이야기

하늘바다angelo 2011. 10. 17. 07:14

 

 

강원도 바우길 1구간 선자령 풍차길(I)

 

- 첫번째 이야기 -

2011년 9월 5일 월요일 이야기

 

소임에서 물러나고 길을 떠난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지금껏 얼마나 자주 길을 떠났던가

짧은 길, 멀고 긴 길, 기쁨으로 나섰던 길, 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길

그 길을 오늘 다시 떠난다.

 

 

떠나는 길에서 길을 만난다.

대관령 휴게소, 한 때는 발디딜 틈조차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던 대관령 휴게소

이제는 덩그라니 외롭게 남아 어제의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의 추억을 먹고 산다.

 

 

선자령 가는 길로 방향을 잡는다.

비가 그리 오래 전이 아닌 때 나보다 먼저 왔었나 보다.

강원도 바우길은 물청소로 나를 반긴다.

기분 참 좋다.

 

 

"애기 앉은 부채"( Symplocarpus nipponicus Makino )

먹고 버린 밤껍질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외떡잎식물 천남성목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습기가 많은 높은 산에서 자생한다.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하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가뿐 숨을 몰아 쉬어야 한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깊은 산속으로 들어선 것같다.

흐르는 물소리가 발자국 소리마저 삼켜버리고

주변의 모든 소리들도 물소리와 하나가 된다.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높은 곳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나는 너를 거슬로 지금은 위로 위로 오른다.

결국은 다시 아래로 아래로 내려 오겠지만

 

 

아래로 흐르는 물 길을 건너고 또 건너 간다.

그곳에는 징검다리가 묵묵히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사부 성바오로의 말씀을 뼛속까지 새기고 있으면서도

지금은 일탈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대관령 양떼 목장 곁을 걷는다.

철조망으로 구분되어 있는 바깥 땅을 걷고 있다.

안쪽 땅을 발고 있는 이들은 입장료를 지불했다.

나도 몇 해 전에는 지불했었는데...

 

 

 

망원 렌즈로 쭈욱 당겨본다.

사람들이 갇혀 있는 걸까요?

양들이 갇혀 있는 걸까요?

어리석은 질문 하나 던져 봅니다.

 

 

 

저기 저 곳이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로 유명세를 탄 알펜시아 리조트다.

 

 

양떼 목장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나의 책 "아침기도 저녁기도'의 표지 사진도 이곳 양떼 목장에서 찍었었다.

바람에 가지마저 한쪽으로 치우쳤다.

분재를 위해 철사로 동여지는 아픔처럼 그렇게!

 

 

저기 저 오두막이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떨까?

태풍이 몰아치면

폭우가 쏟아지면

폭설이 내리면

그곳에서 살만할까?

 

깊은 산속 옹달샘 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가능한 꿈일까?

 

 

 

양떼 목장을 지나 계속 길을 걷는다.

하늘의 구름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날이다.

 

 

소나무 숲길은 늘 상큼하다.

어쩌다 맡아 본 아기들의 살 냄새라고 할까, 부드럽다.

 

 

 

길이 꼬불꼬불 예쁘다.

넓은 대로가 아니라 좁다란 길인데 편안하다.

 

적게 가지면 더 불편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어서오세요.

차별도 특별 대우도 없다.

누구든지 어서오십시오.

 

 

 

몇해 전, 큰 태풍이 불어와 산림이 많이 유실되었지만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땀과 함께 어린 소나무들이 무럭무럭 관심 속에 자라고 있다.

 

 

잠시 휴식

바우길 1구간과 2구간은 출발 장소에서 예까지 같이 와서

여기서부터 갈라진다.

 

 

오늘 내가 갈 길은 1구간

 

 

사람을 거꾸로 땅 속에 심어 놓은 것 같다.

그런데 다리가 몹시 길고 길다.

 

 

흐르는 물도 평소에는 일정한 높이가 있다.

어쩌다 넘쳐나기도 하고 메마르기도 하지만

일정한 높이가 있어 더불어 살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도 일정한 타자와의 관계의 높이가 있을 터,

그 높이가 유지 되면 관계는 아름답겠지요.

 

 

신나게 흐른다.

어디까지 달려 가려는지..

흘려 보내는 사진이고

 

 

흘러오는 물을 맞이 하는 사진이다.

 

오고 가는 수많은 인연들 한가운데 우리는 서 있다.

 

 

징검다리 위에 서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들어간 숲에 우뚝 서 있는,

수많은 인연 한가운데 수 백년을 산 것 같은 소나무를 만난다.

 

 

삶의 조건이 응달이어서 그러했는지

수많은 가지가 뻗고 죽고 뻗고 죽고를 반복해

하늘 위로 높이 생명을 떠받치고 서 있다.

 

우리들 영혼에는 얼마나 많은 삶의 흔적, 인연의 흔적, 아픔의 흔적이 있을까?

그 흔적은 상처가 아니라 생명의 역동성이었음을 깨닫고 싶다.

그래서 오늘을, 지금을 진솔하게, 당당하게 살고 싶다.

 

 

 

또 다른 풍경이다.

하얀 옷을 입고 있다.

여기 저기 흩어져 흰옷을 걸치고 있다.

 

자작나무 숲!!!!!!

 

 

나 이런 사람이야♬ DJ DOC의 노래가 흐른다.

 

♬나 이런 나무야♬

별을 단 장군이야

알아서 감탄해♪

 

 

 

도도하게 자작나무 숲이 노래를 한다.

끊임없이 들려오던 물 소리도 멈춘다.

아~~ 신음 소리조차 흘려보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문다.

 

 

하얀 피아노 건반 사이에

나는 검은 건반으로 서 있다.

자작나무 숲의 노래는 흰건반들이 부른다.

검은 검반은 어쩌다 한번 울린다.

 

 

 

미끈한, 요즘 말로는 꿀벅지(???) 미인이다.

미인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자작나무 숲을 빠져나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둘러보고 또 둘러보고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하다가 한참이 걸렸다.

 

 

자작나무 숲을 벗어나자

흐르는 물소리가 조강지처처럼 나를 기다렸다는 듯 다시 요란하다.

 

 

하얀 햇살이 달뜬 마음에 내려앉는다.

회포를 풀려고

그리움을 벗기려고

망부석 위에 나도 앉는다.

 

잠시 쉬었다 가십시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