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4-1 코스
-저지에서 무릉2리까지 17.5 Km-
7월 8일 목요일 오전 11시
출발이다, 14-1코스!
14코스를 시작했던 곳이기에 익숙한 듯 움직인다
물 두 병과 캔커피 하나를 산다 그리고 제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준비한 김밥 두 줄
하얀모자와 붉은색 티셔츠 차림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알 수 있어요.
저지리 팽나무 쉼터, 더위에 모든 것이 멈춰 있는듯 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인데 난 왜 이 길을 걷고자 하는 걸까?
검은빛 마을 돌담 아래 한여름 태양만큼 붉은 제주나리가
내가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저쪽으로 쭈욱 가시오!"
순방향은 푸른색, 역방향은 주황색
오늘은 순방향이다.
거스르지 말자. 오기부리지 말자.
저지오름과 간세,
제주의 초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랑말은 말에 비해 체구가 작지만 체질이 강건하고 용감하다.
간세는 제주조랑말의 이름이다.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왔다.
제주 올레를 제대로 즐기려면 초원을 꼬닥꼬닥(느릿느릿) 걷는 간세처럼
놀멍 쉬멍 간세다리로 ....
간세다리로 걷다보면 그 느린 걸음마저 멈추게 하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선인장 노오란 꽃이 가시틈에서 활짝 폈습니다.
나보다 먼저 떠난 올레꾼이 있었네요.
나처럼 혼자 놀고 있는 올레꾼이
'폭낭 쉼터'에서 짐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고 있습니다.
사진 한장 찍겠다고 말을 걸자 자연스레 친구가 됩니다.
오늘의 친구와 담배를 나눠 피웠는데 이 친구 자신의 꽁초뿐 아니라 주변의 꽁초들까지 다 모아들입니다.
나는 그렇게 해 본 적이 있는가?
먼저 도착했으니 먼저 떠나라고 ...
걸을 때는 혼자 놀자고
저기 저 앞에 그가 걷고 있습니다.
시계 방향으로 갈까?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갈까?
한바퀴 뱅글 돌고 가라고 하는 걸까?
얼마나 자주 우리는 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을까?
강정동산, 넓은 초지가 눈과 마음을 편하게 한다.
저기 저 허수아비는 언제부터 서 있었을까?
곡식 여무는 들판이 아닌 이곳에서 허수아비는 무엇을 하는걸까?
무엇인가 해야만 하는 여유 없는 우리네 삶이 남긴 빈시간을 혼자서 대신 즐기고 있는걸까?
어허둥둥, 춤사위로 흐느적거리는 너 앞에 마주서서 너와 함께 나 또한 잠시나마 어깨를 들썩인다.
사방으로 빙 둘러 다양한 오름들이 장관이다.
그 꼭대기에 문도지오름의 주인들이 한가롭다.
"실례합니다. 제가 좀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푸두둑 몸을 일으키는 소리에 내가 놀라 겁을 먹는다.
결국 길 한가운데로 가지 못하고
한자 이상 자란 풀섶길로 멀찍히 돌아서 내가 간다.
어이없는 허한 웃음을 혼자 흘려보냈다, 몇번씩이나...
엉뚱하게 겁을 먹고 혀를 찼는데
이젠 글귀마저 내게 겁을 준다.
저지곶자왈이다.
곶은 빌레(암반) 때문에 밭을 갈기에 마땅하지 않은 땅을
자왈(덤불)은 쓸모없이 버려진 땅, 나무나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말한다.
나무에 혹이 붙었다.
바닷가 바위에서 볼 수 있는 따개비처럼 나무에 혹이 붙었다.
한낮에도 빛이 쉽게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
버려진 땅, 곶자왈이 사실은 제주를 살아 숨쉬게 한다.
무성한 숲의 생명력은 나를 세상이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지 않는다.
저지곶자왈을 꼬불꼬불 표식을 따라 부지런히 걷다보면
오설록(O'sulloc) 다원이 넓은 품으로 올레꾼을 반긴다.
14-1코스는 중산간에서 시작하여 중산간에서 끝난다.
바다도 없다.
민가 하나 없는 짙은 숲길을 걷다가 처음으로 사람들의 무리를 만난다.
오설록, 관광객들로 붐빈다.
나도 예까지 왔으니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호강 한번 했습니다.
배추벌레(?) 한마리 그 느린 몸짓으로,
오체투지(?)
주황색리본을 따라 역방향으로 걷는다.
"아이야, 이제 너 또한 나처럼 반은 걸었단다. 잘가!"
무릉곶자왈이다.
담이 몸을 낮추어 길을 터준다.
점점 짙어진다.
길을 잃고 헤매지 않기 위해 파란 선과 리본을 살피고 또 살핀다.
"으~음, 저기 있구나!"
당신의 수호천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초록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었던 곶자왈을 벗어나니
여기 사람의 흔적이 있다.
말짱하고 질서정연하고 바쁘다.
무릉리 인향마을
한여름의 햇살은 마을을 잠들게 한다.
햇살이 비스듬히 몸을 낮추면
저기 저 의자에 할머니할아버지 앉으실까?
그곳에 앉자 저녁 바람 손님 맞이하실까?
인향 마을에는 정낭이 있는 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나 둘 셌
멀리 가셨군요.
언제오시려나?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것이라고 졸업식 때마다 들었었지요.
우리들 이별이 지나 다시 만나기까지
무턱대고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에도 언제쯤이라는 정낭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후 다섯시 사십분이다.
근 일곱 시간을 놀멍 쉬멍
여름 더위는 땀으로 날 목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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