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어 길을 걷다/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1코스

하늘바다angelo 2011. 7. 26. 10:32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주천에서 운봉까지

 

 

2011년 6월 23일 오전 9시

어제 무진장 비가 오더니, 둘레길을 걸을 수 있을까 걱정들은 태산이었지만

어제 몽땅 젖은 신발들을 말리는 정성에 하느님도 감동하셨는지

걷기에 딱 좋은 날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홀로 걷다가 오늘은 서강대 가톨릭 경영자 과정 10기 원우들과 함께 걷습니다.

님들과 함께 걸으니 그 맛 또한 참 좋습니다.

 

출발을 주천면에서 하지 않고 차도가 끝나는 내송마을 입구에서 1코스를 시작합니다.

 

 

 

주천면을 감싸고 있는 지리산에도 짙은 구름이 덮혀 있습니다.

따가운 햇살을 막아 줄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큰 도움입니다.

 

 

 

첫 발걸음이 싱싱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등산이나 걷기로 다져진 우리들이기에 싱싱합니다.

산으로 숲으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힘찬 희망을 봅니다.

 

 

 

여기서 단체 인증샷도 찍고

오늘 날씨가 있기까지 밤새 기도한 동료 이훈 신부님에게도 한다발 감사의 인사도 전하고...

오늘은 저를 포함 세 명의 신부가(10기의 신부가 몽땅 참석) 있습니다.

 

 

 

♣개미정지♣

마을을 지나 농로가 끝나는 곳에 개서어나무숲이 나온다. 그곳이 개미정지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 할까,

길 떠나는 사람들이 마음을 다잡는 곳일까?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는 곳일까?

정지라? 정자도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로 정지는 부엌인데 그것도 아니고

이곳 사투리로 정지는 '쉼터'를 말한다네요.

 

 

 

오르막길이다.

쭈욱 오르막길이다.

조금씩 다들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한 고비 오르면 또 한 고비가 기다리고 있지만

새소리 바람소리 은은한 솔향에

휘굽어 살짝 숨을 돌리게 하는 넉넉함도 있다.

 

 

 

재촉하지도 않는다.

급할 것도 없다.

도시의 시간, 정해진 시간들의 바쁜 일상에서 신기루를 쫓아살다.

오늘은 내 발끝을 보고

친구의 얼굴과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미정지에서 구룡치를 오르는 길의 완벽한 약도입니다.

무슨 말이나 설명이 필요없는 훌륭한 약도입니다.

 

 

 

"휴~~"

해발 525미터

아홉마리 용이 모여 이루어 낸 굽이쳐 흐르는 길이라 구룡치일까?

어떤 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까?

 

 

 

걷기에 황홀한 길이 구룡치부터 이어진다.

♬♬♬ 이리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

저절로 흥에겨워지는 주변이 온통 아름다운 숲길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햇빛이 나뭇잎 위로 조용히 내려앉아 밝은 웃음 전한다.

 

 

 

"오, 하느님! 당신의 작품입니다."

 

 

 

사무락은 바람을 뜻하고

다무락은 담벼락을 뜻하는 사투리라고 합니다.

"바람(희망)을 비는 돌담"이지요.

 

갈 때는 무사히 다녀오겠다고,

올 때는 잘 다녀왔다고 돌을 하나 얹어 놓고 수많은 사람이 바람을 빌었을 것입니다.

 

 

 

걷는 시간이 더해지면

몸이 힘든 만큼 겸손도 더해집니다.

세상에 내 모습이 어떻게 보여질까에 관심을 두다

나는 누구인지?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합니다.

 

 

 

사그락 사그락 자기 발소리에 마음이 묻히는 숲길이 끝날 즈음에 여러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이 깊어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질 때

배낭 속에서 이것저것 꺼내 나누어 먹고 마시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위로를 나누어 먹고 마시는 축복의 시간이 됩니다.

혼자 걸을 땐 쉽지 않은 느낌~~

 

 

 

회덕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샛집이 있습니다.

짚으로 지붕을 이은 집을 초가집이라 하고

억새로 지붕을 이은 집을 샛집이라 합니다.

초가 지붕은 해마다 짚을 바꾸어야 하지만

샛집 지붕은 억새로 덧 씌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5년 마다 부분적 수리를 하고

보통 1세대에 한 번 억새를 완전히 바꾼다고 합니다.

 

 

 

옛날에 그 많았던 마을 샛집은 한국전쟁 때에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고

현재 샛집은 두 채만 남아 있다고 한다.

길에서 보이는 이 샛집엔 1895년(고종 3년) 이곳에 이주하여 3대째 살고 있다고 한다.

2000년 6월 23일 전북민속자료 제35호로 등재.

 

 

 

회덕마을에서 노치마을 가는 길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섬진강과 낙동강 수계로 나누어지는 곳이기도 하구요.

마을 왼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이 수계인 남강으로,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이 된다고 합니다.

 

 

 

지리산 서북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노치마을 사람들이 운봉장으로 다니던 옛길로 가는 논둑길

 

 

 

동복오씨 묘역이 있는 1코스의 마지막 휴게소에서

내려다본 기장마을

그리고 그 너머에 운봉 들판,

행정마을,

삼산마을,

그리고

운봉읍이다.

 

 

 

두어 사람이 많이 힘들어 했다.

마지막 휴게소에 한참을 쉬었는데도...

아니 어쩌면 마지막 휴게소라는 말에

막걸리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또 더하여지고

김치가 맛있다고 거의 동을 내더니....

결국!

 

기장마을 회관 앞에서 차를 기다린다.

 

나와 또 한 사람만이 저기 제방길을 걸었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 있었지만

언제 차가 도착할지 몰라 무작정 운봉쪽으로 도로 위를 무작정 걸었다.

한 모퉁이만 돌면 운봉읍 그곳에서 1코스 우리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지리산 둘레길

 

이 원 규

 

5월의 푸른 눈빛으로 그대에게 갑니다

함부로 가면 오히려 병이 더 깊어질 것만 같아

생의 마지막 사랑마저 자꾸 더 얕아질 것만 같아

빠르고 높고 넓고 편한 길을 버리고

일부러 숲길 고갯길 강길 들길 옛길을 에둘러

아주 천천히 걷고 또 걸어서 그대에게 갑니다

 

잠시라도 산정의 바벨탑 같은 욕망을 내려놓고

백두대간 종주니 지리산 종주의 헉헉

앞사람 뒷발꿈치만 보이는 길 잠시 버리고

어머니 시집 올 때 울며 넘던 시오리 고갯길

장보로 간 아버지 술에 취해 휘청거리던 숲길

애빨치 여빨치 찔레꽃 피는 돌무덤을 지나

밤이면 마실 처녀총각들 물레방앗간 드나들고

당산 팽나무 달 그늘에 목을 맨 사촌 누이가

하루 종일 먼 산을 바라보던 옛길

그 잊혀진 길들을 걷고 걸어 그대에게 갑니다

 

찔레순 꺾어 먹으며 층층나무 환한 용서의 꽃길

내내 몸을 숨긴 채 따라오던 검은등뻐꾸기가

올딱벗-고, 홀딱벗-고! 욕망을 비웃는 반성의 숲길

3도 5군 12면 100여 마을을 지나는

성찰과 상생의 지리산 둘레길

어머니의 0, 용서의 0, 사랑의 0, 오옴의 0

비로소 발자국으로 850리 거대한 동그라미 하나 그리며

날마다 보랏빛 붓꽃으로 신록의 편지를 쓰는

5월의 푸른 눈빛으로  그대에게 갑니다

 

그리하여 돌아올 때는 그대와 더불어

섬진강변을 걸어 이팝나무 꽃그늘 속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검은등뻐꾸기가 어허허-허 어허허-허! 놀리는 소리에

괜스레 얼굴 붉히며 슬쩍 손이라도 잡으며

상사폭포 수락폭포를 지나 그렇게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