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어 길을 걷다/제주 올레길

제주 올레 12코스(I)

하늘바다angelo 2010. 5. 11. 17:28

 

제주 올레 12코스(I)

- 무릉~용수 올레-

 

2010년 4월 11일 오전 11시, 이 날이 무슨 날인지 당일에는 기억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안다. 1991년 4월 11일 오전 10시 30분 이탈리아 로마 성바오로 수도회 5층 유리창에서 내가 떨어진 날이다.

벌써 만 19년이 지났다. 그런데 오늘은 걷는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들 기적이라고 했는데 지금 나는 걷고 있다.

 

 

폐교를 개조한 자연생태문화 체험장이 11코스의 도착지이고 12코스의 시작점이다.

운동장에서는 버섯을 키우기 위한 나무 작업이 한창이었고 짧은 인사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11코스를 걷지는 못했지만 생태문화 체험장을 운영하시는 분의 땀과 사랑이 11코스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체험장과 이어지는 마을 담장에서 야생 양귀비를 닮은 꽃을 처음 만났다.

오늘은 동행이 있다.

우리 팀장님께서 알려주신 이 꽃은 캘리포니아를 상징하는 주꽃(State Flower)인 '파피꽃' (Poppy, 양귀비꽃)이다.

 

 

한적한 마을의 고요가 노란 유채꽃으로 인해 밝고 명랑하다.

삶의 다양한 경험과 타자와의 관계는 우리의 삶을 봄날 유채꽃처럼 산뜻하게 한다.

"당신 곁에는 당신을 아름답게 하는 유채꽃이 있습니까?"

서강대 가톨릭 경영자 과정 10기 2팀 무한질주의 팀장님과 부군되시는 예비역 공군 장군님이 바로 오늘의 동행, 유채꽃이다. ㅋㅋㅋ 

 

 

골목 귀퉁이 마을 분들의 자상한 마음, 배려를 마주하고 해맑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조금 전보다 활짝 핀 캘리포니아 파피, 살짝 연출을 한다.

아가씨 얼굴에 더해진 화장처럼... 스프레이로 물방울을 만들었습니다.

 

 

담장에는 유채꽃, 지붕에는 벚꽃, 집 벽에는 아기자기한 크기의 돌들이 소박한 어울림으로 사람과 더불어 산다.

화려한 동거는 기대와 집착으로 이내 무너지지만 소박한 어울림은 서로 내어줌을 통해 생명을 가꾼다.

 

 

마을을 지나 더 넓은 밭, 들판길이다.

살짝살짝, 가끔가끔 흩날리는 빗방울이 저 멀리 가물거리는 부드러움을 만들어 낸다.

햇살은 구름 위에서만 춤을 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떠남과 돌아옴이 함께 하며

노동과 기쁨이 한자리에 머물러 있다.

 

 

도원생태연못, 넓이는 그리 자랑할 것이 없지만 안온하다. 지친 나그네의 발걸음을을 살짝 잡아준다.

"이보게 친구, 쉬었다 가시게!"

 

 

봄이 둔덕 위까지, 소나무 아래 길까지 다다랐다. 

배낭을 베게 삼고, 소나무 가지를 이불 삼아 큰대자로 누워 한숨 자고가도 좋겠다.

"거기 누구 없소?"

 

 

적당히 나이드신 두 어르신이 마늘총각(마늘종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사전은 말한다)을 뽑기 위해

연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신다.

저 끝까지 언제나 다....!

 

 

 

얕은 오름, 녹남봉이다.

꼬불꼬불 저기 저 어느 곳을 우리는 지나왔을까?

어제, 과거는 이처럼 온전히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PGA 챔피언십 우승자 양용은 골퍼가 다녔던 초등학교,

 지금은 문을 닫고 무엇을 하려는지 중기들이 큰소리를 내며 주인 행세를 한다.

 

 

양파 수확이 마무리 중이다.

한 총각은 부지런히 작은 트럭에 빨간 망태기의 양파를 옮긴다.

 

 

신도바당 올레, 파도와 바위 틈으로 괭이눈이 부리부리하다.

한가운데 노란꽃은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눈을 마주칠 수 없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눈을 바라보거나 눈맞추기를 하지 않는다.

 

 

저기 저 친구들은 더불어 함께 서 있건만

넌 왜 홀로 산을 막고 서 있느냐?

출렁이는 보리의 노랫가락에 화음으로 서 있는거니?

 

 

 

수월봉을 오르다 돌아본 풍경 속의 마을은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용으로 마주서지 않는다.

살짝 고개 숙여 바람길을 열어준다.

 

 

엄마 곁의 망아지 한마리, 예쁘다.

 

 

어 이놈보소!

고삐없는 망아지,

고개 빧빧히 들고 무서운 것 없는지

내게 덤빌 자세다.

엄마야! 살짝(?) 무서워 난 뒷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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