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성바오로수도회 서영필 신부가 ‘사도 바오로의 영성’을 말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해 이탈리아 로마의 성바오로수도회에서 만든 뒤의 포스터에 바오로의 얼굴이 보인다. | |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다가 수도원을 찾았다. 깜짝 놀랐다. 아담하고, 정숙하리란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부~릉 부~릉!” 책을 실은 트럭이 들락거리고, ‘웅~웅’하며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거기서 서영필(47)신부를 만났다. 그는 바오로 영성을 좇는 대표적 수도회인 성바오로 수도회의 ‘엔진’을 맡고 있다. 성바오로출판사의 편집장과 사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 신부는 “여길 처음 찾는 신부님들도 깜짝 놀란다. 우리는 이곳을 ‘수도원’이 아니라 ‘공장’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곳에선 가톨릭 관련 온갖 출판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윤전실 위에는 칼을 든 바오로 동상이 말없이 서있었다.
“사도 바오로가 오늘을 산다면 무슨 일을 할까?” 편집장과 사장을 겸하고 있는 서 신부가 뜬금 없이 물었다. 멀뚱멀뚱 섰는데 그는 “저널리스트”라고 자답했다. “왜 그런가?”하고 이유를 물었다. 서 신부는 “2000년 전 사도 바오로의 메시지는 다름 아닌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사도 바오로의 영성, 그 핵심은 과연 뭘까.
-흔히 ‘바오로는 칼, 베드로는 열쇠’라고 부른다. 왜 ‘칼’인가.
“하느님의 말씀은 비수와 같다. 우리의 심장까지 꿰뚫고 들어오는 날카로움이 있다. 바오로는 에페소서에서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6장17절)’라고 썼다. 그러니 ‘바오로는 칼’로 통한다.”
-그 ‘칼’로 뭘 치는 건가.
“제일 먼저 죽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건 ‘비운다’는 개념과도 통한다. 사도 바오로에겐 그게 전적이고, 온전한 자기 회개를 의미했다.”
-바오로는 처음에 유대교를 믿었다. 잔혹하게 기독교를 탄압하다가 개종했다.
“사도 바오로를 말할 때 ‘개종’을 빼놓을 수 없다. 개종이 뭔가. 대부분 사람은 이쪽 종교에서 저쪽 종교로 넘어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개종은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을 체험했다’는 말이다. 그게 개종의 참뜻이다.”
-바오로의 개종을 말해달라.
“바오로는 말을 타고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바오로는 말에서 떨어졌다. 그 장면이 성서에는 희랍어로 ‘내동댕이쳐졌다’라는 말로 표현돼 있다. 그때 바오로는 눈이 멀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동댕이쳐졌다’는 표현에 주목한다.”
-왜 그런가.
“바오로는 자신이 내동댕이쳐지는 순간에 예수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내동댕이쳐지는 과정 없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그걸 겪은 뒤에 바오로는 역사의 무대에서 약 3년간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건가.
“성서학자들이나 연대기학자들은 이 시기에 ‘바오로가 사막으로 갔다’고 추정한다. 거기서 은둔과 참회, 기도의 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 후에 바오로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바오로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다.
“그렇다.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자였다. 그래서 죽을 때도 로마에서 참수 당했다. 바오로가 유대인이었다면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 것이다. 예수님이나 베드로처럼 말이다. 당시 치욕적인 십자가 처형은 로마 시민의 몫이 아니었다. 게다가 바오로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예수의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베드로를 ‘유대인의 사도’, 바오로를 ‘이방인의 사도’라고 부른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는 말 그대로 ‘소수의 종교’였다. 당시 로마인들의 종교는 다신교였다. 숱한 신들이 그들의 집안에, 거리에, 예배당에 모셔져 있었다. 심지어 ‘이름 없는 신’이란 이름을 가진 신도 있었다. 그런데 바오로는 예수를 안은 채 로마의 심장으로 녹아들었다. 거기에는 ‘선교의 지혜’가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예수를 설하는 바오로에게 한 로마인이 석상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당신이 말하는 신은 이 많은 신들 중에 대체 어떤 신이란 말이오?” 주위를 둘러보던 바오로가 답했다. “내가 말하는 신은 바로 저 ‘이름 없는 신’입니다.”
바오로는 대놓고 로마의 종교를 부정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그들 종교의 ‘언어’와 ‘문법’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상대가 내 말에 걸리지 않을 때, 나의 뜻도 전달되는 법이다. 서 신부는 “그게 요즘말로 하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다.
신약성서 중 최초로 기록된 것은 뭘까. 그건 마태오(마태)복음도, 마르코(마가)복음도, 루카(누가)복음도, 요한복음도 아니다. 이들 4복음서도 예수 사후에 기록된 것이다. 가장 먼저 기록된 성서는 다름 아닌 바오로의 데칼로니카서다. 그래서 ‘바오로의 서간’에 대해 물었다.
-신약성서는 모두 27권이다. 바오로는 그중 7권(테살로니카 전서, 코린토 전·후서, 갈라티아서, 로마서, 필리피서, 필레몬서. 이외에도 바오로의 이름으로 된 6편의 편지가 더 있으나 그의 제자나 후학들이 스승의 이름을 달았다는 게 신약학계의 통설이다)의 서간문을 썼다. 바오로의 영성을 관통하는 성서 구절 하나를 꼽는다면.
“올해 초였다. 로마의 성바오로 수도회 총원장인 실비오 사씨 신부님도 한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받았다. 사씨 총원장님은 갈라티아서 2장20절을 꼽았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란 구절이다. 바오로 영성의 핵심이 뭔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체험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산다’고 했다. 그 의미는.
“중요한 건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영적으로 알아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게 된다. 그럴 때 내 안에 내가 비워지고, 그리스도로 온전히 채워지게 된다.”
-바오로는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코린토 전서 1장21절)’라고 썼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지혜’와 ‘슬기’를 믿고 살아간다. 어째서 ‘지혜’와 ‘슬기’가 부숨의 대상인가.
“예수님은 십자가죽음을 당했다. 당시 그걸 바라보는 시각도 여럿이었다. 똑똑하고 지혜롭다는 그리스인들은 ‘어리석다’고 했다. ‘하느님의 아들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느냐’는 것이었다. 또 ‘힘의 메시아, 권능의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수치스럽다’고 했다. ‘우리를 해방시켜 줄 메시아가 어떻게 치욕스런 십자가형을 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를 아는 이들에겐 어떤가. 십자가 죽음이야말로 ‘구원’을 가져다주는 일이다. 그러니 인간의 ‘지혜’와 ‘슬기’는 부숨의 대상이다. 그게 부서질 때 하느님의 지혜도 보게 된다.”
-사람의 지혜로는 왜 하느님을 못 보나.
“하느님은 무한하신 분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무한은 유한을 안을 수 있다. 그러나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를 통해선 하느님을 볼 수가 없다.”
-그럼 무한이 유한으로 올 수는 있나.
“물론이다. 무한이 유한으로 올 수 있다. 그게 ‘말씀’이 ‘육신’이 되는 거다. 예수님이 그렇게 오신 거다.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은총이 뭔가. 그건 우리에게 깨달음의 길을 걷도록 한 것이다.”
-깨달음의 길이란 뭔가.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무한한 하느님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성바오로 수도회의 창립자인 야고보 알베리오네(1884∼1971) 신부는 그걸 ‘뽀꼬 뽀꼬(poco poco)’라고 표현했다. 이탈리아어로 ‘조금씩, 조금씩’이란 뜻이다. 그렇게 다가가는 삶의 모습이 바로 영적인 모습이다.”
-그 영적인 모습의 바탕은.
“사랑이다. 사도 바오로가 쓴 ‘사랑의 송가’를 보라. 믿음과 소망, 사랑 중에 결국 무엇이 남는가. 사랑이 남는다.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정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설사 그가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영적인 삶에는 결국 사랑이 남기 때문이다.”
성바오로 수도회와 성바오로딸 수도회 등은 올해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맞아 ‘바오로 서간’을 모두 손으로 쓰기, 바오로의 영성과 실천을 짚어보는 세미나 개최 등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 중이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사도 바오로(바울)=소아시아 동남쪽의 그리스풍 도시였던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그리스 문화권에서 교육을 받은 로마시민권자다. 처음에는 열렬한 유대교 신자였다.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가던 중 ‘예수’를 체험, 개종했다. ‘유대인의 사도’로 불리었던 베드로와 달리, 바오로는 3회에 걸친 대전도 여행을 하며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었다.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를 있게 한 중추적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