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7코스 -둘-
제주 올레 17코스 -둘-
길은 계속된다.
엄청난 파도의 폭발에 발이 묶여 있다가 다시 바람 속으로 길을 떠난다.
바람은 모래 언덕을 넘으며 풀잎을 거칠게 쓰다듬는다.
봄에는 보리밭 길이라고 하던데
겨울, 이 길은 황량하다.
펼쳐진 초록의 들판은 마음을 울렁이게 하겠지만
검은 들은, 비에 젖은 들길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다 좋은데 비에 젖은 흙이 진흙이 되어
신발 바닥에 두껍게 달라 붙는다.
툭툭 털어 내지만 그래도 발이 무겁다.
눈 앞에는 파도가 몽돌 위를 구르다 하얀 물방울 레이스 치마로 옷을 갈아 입고
저 건너편 이호테우 해변 위로는 구름이 흘러 내린다.
트로이 목마
본 적은 없지만 트로이 목마가 저렇게 생겼을까?
저 목마 안에는 누가 칼을 품고 밤이 오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을까?
파도를 타고 스산한 기운이 몰려 온다.
낮은 포복으로 바위도 초병의 눈을 속이며 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샤악~
성 안은 고요하다.
지금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폭풍 전야의 적막함이라 할까!
가까이 숨어 있는 적들은 보지 못하고
멀리 있는 적을 향해 미사일들을 준비하고 있네요.
등하불명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두 아시겠지요.
전쟁 놀이는 이제 그만 하렵니다.
제 전공이 아니라서요.....
"아, 배고파! 뭐 좀 먹을 것 없나..."
눈, 비 그리고 거센 바람 때문에 갈매기도 종일 굶었나 봅니다.
저도 배가 고파요.
비바람 속에서 배낭 속의 점심을 아직 펼치지 못했습니다.
구름이 비워준 틈으로 햇살이 선명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오랜만이야 친구!
도두항에서 도두봉으로 건너 가려면
생선 뼈를 타고 넘어야 한다.
배고픈 나에게 살점 좀 남겨 주지
누가 이렇게도 예쁘게 드셨을까
종일 굶은 갈매기들일까?
하늘이 해에게 자리를 많이 양보했나보다.
눈도 비도 그렇게 넓은 마음이 되었다, 구름처럼 해에게.
나는 얼만큼 욕심을 채워야 그 누군가에게 내 눈 앞의 것을 양보할 수 있을까?
도두봉을 오르다 마음씨 좋은 부부를 만났다.
자신들을 위해 준비한 따뜻한 커피를 하루종일 추위와 함께한 내게 양보한다.
나는 점심으로 준비한 빵 한 조각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와 더불어 부끄럽게 내민다.
마음씨 좋은 부부와 헤어져 다시 도두봉을 오른다.
오르다 뒤돌아 보고
오르다 뒤돌아 보며 감동이 노래가 된다.
저기 저곳 산마루 넘어에는 어떤 경탄이 기다리고 있을까?
등 뒤에 남겨 둔 감동이 아깝지는 않을까? 그래서 후회하지는 않을까?
기대, 환희, 기쁨일까?
실망, 아쉬움, 후회일까?
도두봉 정상 바로 직전 뒤통수가 심란해 뒤돌아 보았다.
그대로다.
나처럼 변덕쟁이가 아니다.
도두봉 정상
멈춘 채로 빛을 보는 아저씨
나도
저 아저씨가 앉은 꼭 저 자리에 앉고 싶다.
빛을 보기 위해서
근데 저기가 제주공항이구나!
아저씨가 일어나기를 한참을 기다렸다가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 보세요.
자리 많아요.
눈이, 마음이 모든 것이 뻥하고 뚫리지요?
아저씨가 왜 그렇게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는지 알것도 같다.
나중에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자주 오신다고
제일 좋다고
높지 않은데 사방이 훤하다고
뻥 뻥 뻥 시원하다고 하신다.
도두봉
전후좌우, 동서남북이 마냥 뻥이다.
하늘도 뻥!!!
높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넓게 트인 명당이다.
섬의 머리, 도두!
도두봉에서 내려와 점점 공항 가까이로 간다.
머리 위로 비행기들이 슈우웅 요란한 소리를 남기고 지나간다.
저기 두고 온 도두봉에 빛이 내려옵니다.
용두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