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3코스
지리산 둘레길 3코스
남원시 인월면에서 함양군 마천면 금계리까지 19.3Km
2011년 5월 18일 오전 8시 20분이다
어제 지리산 둘레길과의 첫 만남을 2코스와 나누었고
오늘은 3코스와 긴 여정의 만남을 시작한다.
아침인데도 햇살은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겁을 주려고 하는걸까?
앞선 둘레꾼은 양산까지 펼쳤다.
강둑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출발점을 돌아본다.
으음~ 이 정도면 해볼만 하겠는데...
중군마을의 담장 벽화는
이 마을의 특산물을 소개한다.
아, 꿀과 잣이구나...
너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그림처럼 펼쳐보일 수 있다면
오해나 이해하지 못함 또한 없겠지요.
하지만 한 인간이 지녀야 하는 존엄성은 어디에 머물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의 방 또한 꼭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또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몇몇 그룹이 나를 앞질러 간다.
담장과 예쁜 화장실, 담배 한 개피를 즐기는 사이
바쁘게 나를 앞질러 간다.
아직 내가 앞지른 사람은 없다.
마을 길을 지나 산 길로 접어든다.
아, 여기가 지리산 둘레길이지
휘이 둘러 첩첩이 지리산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다.
산과 산의 틈틈이에는 사람들의 손길이 있다.
억척스런 사람의 손길이 있다,
저 손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밥이 되고 그 밥은 또 다시 사랑이 되겠지요.
지리산, 지리하다고 해서 지리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곧장 천왕봉이다, 제석봉이다 하고 정상을 향해 갈 수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지리 지리한 지리산 둘레길이다.
둘레길을 걸으면 마냥 경탄할 만한 풍경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곳에 사는 분들이 "뭐 볼 것 있다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사람하나 지나갈 수 있는 길만 있으면 된다.
그 길에 해가 있고 바람이 있고 새들이 있고 물이 있다,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들판이 있고 구름이 있고 하늘이 있다.
...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
수성대
깨끗한 계곡물에 흐른 땀에 범벅이 된 먼지를 씻어낸다.
혹 예쁘게 화장을 하셨거나 선크림을 바르셨다면
이곳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고 다시 화장을 하시기를......
막걸리를 좋아하신다면
천막 아래 평상에 앉아
흐르는 물에 담궈져 있는 막걸리 한 병 들어올리고
김치 한 접시 눈 앞에 두고
한 잔 시원하게 하십시오.
돈은 함에 직접 넣으시면 됩니다.
막걸리 한 잔으로 속을 채우셨다면
이제 또 다시 길을 떠나십시오.
서두르지는 마시고
길은 그대로 있습니다.
좁은 숲길은 앞만 보고 걸어야 하지요
그러다 툭 트인 공간으로 나오면
휘이 둘러 보십시오.
그리고 뒷걸음으로 걸으며 뒤도 한 번 둘러 보시고요.
마음 좀 넓어지셨어요.
우리 마음 크기는 바늘 하나도 제대로 꽂을 수 없는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저 멀리 우리 사는 모습 코딱지 만하게 보이면
아마도 우리 마음 조금 더 넓어지겠지요!
장항마을 윗당산입니다.
기품 있게 휘 가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여유만만, 유유자적
저 의자에 앉았습니다.
담배꽁초가 무참히 짖이겨진 모습으로 발 아래 수북하게 있습니다.
사람들아, 마 쫌!!!!
장항마을은 지금도 당산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그 옛날 사람들처럼 요즘도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 공동체의 결속과 안녕을 기원하겠지요.
이곳에 이르기까지 오르막길 임도를 죽어라고 걸었습니다.
땀은 줄줄 흘러 눈 속을 파고들고....
준비해온 김밥으로 진수성찬 차려진 밥상보다
더 맛나게 더 배부르게 먹고
주말에만 장사하는 주막인지...
평상에 누워 나른함을 즐깁니다.
송화가루 온몸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다.
함지박처럼 달린 것은 "재떨이"입니다.
빛으로 나아가자 하지만
이 길에서는 빛으로 나아가기 보다 멈추어 서서 빛을 머금은 길을 마냥 보고만 싶다.
옹기종기 몇 기의 묘가 있습니다.
저 멀리 겹겹이 나란히 다리를 뻗은 산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혹 저 산 또한 우리들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묘는 아닐런지요.
다랭이 논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여름날 냉장고 냉동실에서 얼음을 얻기 위해
용기에 물을 흘려 채운 모습 같습니다.
호기심 많은 앞산이 성큼 다가와
빠꼼히 고개를 내밀고
부부 농사꾼의 속내를 훔쳐봅니다.
앞산의 호기심에 저도 전염이 되었는지
전봇대 아래 저 냉장고가 살아 있는 것만 같고
혹 시원한 냉수 한 사발 얻어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허락도 없이 대문을 열었더니
농삿일에 필요한 소도구들이 가지런히 누워 잠을 자고 있더이다.
헉헉~ 재를 넘습니다.
등구재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고갯길
휴~ 쉬고 싶다.
좋다!
휘파람 불며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저어기 가시는 분
토닥토닥, 아니 조근조근 속삭이듯 걷고 있다.
쉬지도 않고 찬찬히, 천천히 걷고 있다.
내가 앞질러 갔는데
잠시 쉬었다 일어서면
조근조근 걷는 저 아줌마 이미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몇 번을 그렇게 우리는 걷고 있다.
창원마을 윗당산
눈이 확 트이고 호흡이 깊어진다.
지리산 준봉들이 줄지어 마중을 나왔다.
중봉, 천왕봉, 제석봉, 하봉, 두리봉... 봉봉봉...
당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이 봉에서 저 봉으로 날아다닌다.
창원마을이 꽤 크다.
엄나무, 헛개나무 등등등
닭과 함께 푸욱 삶으면 국물이 시원한 닭백숙^^;
냉수 마시고 속차려라!
하늘 가는 길이라고 했던가...!
경운기가 하늘로 사라졌다!
아, 이제 지리산 둘레길 3코스도 끝난다.
이 귀퉁이 돌아서면...
오후 다섯 시 십오 분^^;;
지리산길
- 이봉연-
이끼 낀 자리마다
푸진 얘기들
파랗게 돋아나는 길
정상을 목표로 한 길이
아니어도 좋다.
서두르며 가는 길이
아니어도 좋다.
반듯한 길이
아니어도 좋다.
깊이를 알 수 있는 길이 아니어도 좋다.
산과 마을사이로
계곡과 구름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
다랑논 돌담처럼
쌓여진 더운 입김들
이름도 없이 피었다 져간
아름다운 사람들
정겨운 마음들을
안개처럼 만나는 길
전설 속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지리산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