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어 길을 걷다/남해 바래길

남해 바래길 3코스 고사리밭 길

하늘바다angelo 2011. 5. 29. 13:01

 

남해 바래길 3코스 고사리밭 길

    적량성 해비치 마을에서 창선 동대만 휴게소까지(14Km)

 

2011년 4월 13일 오전 10시 15분

차는 도착점인 창선 동대만 휴게소에 주차하고

지난 달 걸었던 2코스의 종착점인 적량성 해비치 마을로 왔다.

 

오늘은 여유롭다.

바쁜 걸음이 아니라 천천히 걷자.

 

 

해비치 마을

재활용의 번떡이는 지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마을 뒷동산 오르듯 가볍게 걷는다.

4월의 남해는 봄기운으로 싱싱하다.

생명의 기운이 땅을 뚫고 올라온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나의 어머니는 농부이시다.

 

어머니의 손길이 바쁘다.

생명을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맞이하는 어머니는 농부이시다.

 

고사리밭 한 켠에서

어머니는 어떤 생명을 기다리실까?

 

 

 

진달래가 곱게 피고

벚꽃잎은 하늘거리며 하늘을 나르고

노란 유채꽃이 자기자랑에 빠져 있는 남해

그 남해의 바래길 3코스는

봄볕에 수줍게 고개 숙여 피어오르는 고사리들의 탄생 울음을

바람에 태워 길 위의 삶들에게 경탄을 선물한다.

 

 

남해의 바다가 일으킨 바람은 지난 해의 고사리를 잠재우고

오늘 이 봄의 아기 고사리의 키를 키운다.

 

 

이게 몽땅 고사리밭입니다.

가도 가도

산을 넘고 넘어도

고사리밭입니다.

 

 

 

오늘 길은 고사리밭 사이를 걷는 길입니다.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릴까?

 

 

어제는 몰랐지만은

내일도 모르겠지만은

 

오늘은 압니다.

 

 

고사리밭의 고사리!!!

 

 

 

남해의 명품 멸치입니다.

한적한 길가에 멸치들이 뼈와 살을 말리고 있습니다

 

 

명색이 고사리밭 길인데

아무리 남해 명품 멸치라 해도 그에게 길을 내어 줄 수 없다는 고사리의 몸부림입니다.

가마솥 끓는 물에 데쳐지는 아픔을 감수하고

봄볕에 몸을 누이면

다이어트에 썬텐까지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 잡습니다.

 

저기 저 민둥산처럼 보이는 모든 곳이 다 고사리밭입니다.

 

 

아름다운 길이, 꿈길이 보입니다.

꿈을 쫓아가야 하는 걸까?

한동안 한눈 팔았습니다.

 

가야 할 길을 앞에 두고 꿈길로 가야 하는지 망설였습니다.

저기 저 길이 더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길인데,

가 보지 못한 길이 아름답고

오늘 갈 수 없는 길이 더 행복한 길처럼 마음은 미련 덩어리가 됩니다.

 

 

잠시 수만년 전의 기억, 미련 덩어리 앞에 섰습니다.

공룡 발자국 화석

이리 저리 공룡이 저 대신 바위 위에 미련을 남겨 두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미련을 꼭 남겨야 하는 걸까요?

 

 

미련이라는 어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사이를 뚫고 고사리가 고개를 내밉니다.

새 고사리는 몇 번이나 살을 뜯기고 나면 어제의 미련 덩어리가 될까요?

 

일곱 번이면 될까요?

아니라고 하신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마태 18,21-22 참조)

 

 

점심을 드시고 잠시의 휴식 뒤

에고고 소리를 연발하며 어머니들 허리를 두드리며 길을 나선다.

허리춤에 고사리를 따서 담을 고생 포대를 겹겹이 지고서 길을 나선다.

에고고 에고고 행진곡에 발을 맞추며 고사리 찾아 길을 나선다.

 

 

고사리밭은 주인이 따로 있고

오늘은 어머니들이 품을 판다.

4월에서 6월까지 고사리 품을 파신다.

 

고사리를 따기 위해서는 허리춤을 낮춰야 한다.

하루종일 아니 우리의 어머니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낮추셨다.

일곱 번도 아니고 일흔일곱 번도 아니고 평생을 고개 숙여 하느님을 섬기신다.

 

 

 

비탈에서 넘어지시지 마시기를

다치지 마시기를

길을 걸으며 죄송한 마음에

하느님께 어머니들을 부탁한다.

 

 

몽땅 고사리밭입니다.

고사리밭 길 사이 소나무 아래서 김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저도 잠시 쉬어갑니다.

에고고 에고고 어머니들 행진곡을 흉내냅니다.

 

 

고사리밭에는 길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넓지 않은 길입니다.

숨을 가쁘게 하는 가파른 길도 있었고

한숨 돌릴 수 있는 평탄한 길도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땀으로 적셔진 수 많은 길이 고사리밭에는, 아니 고사리산에는 있습니다.

 

 

어디까지 가시렵니까?

떠나시기 전에 내려 놓고 가셔요?

무엇이든 무거운 것은 모두 내려 놓고 가셔요?

왜 무거운 짐, 쓸데도 없는 무거운 짐 지고 끙끙거리며 가십니까?

사실 필요한 것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 미련 덩어리는 꼭 내려 놓고 가십시오.

 

 

저 너머 동네가 창선입니다.

차를 두고 왔던 곳입니다.

 

 

고사리밭 길을 벗어나면

한동안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합니다.

갯벌도 있고 갈대밭도 있지만

하루종일 고사리밭을 걸었기에

모든 길이 고사리밭 길입니다.

 

 

거의 종점에 다다라서는

길을 잃고 허부적 거렸습니다.

공사장으로 들어가고

밭 사이 두렁을 비틀거리며 걷기도 했습니다.

미련 덩어리 다 두고 오려 했는데

아직 가슴에, 머리에, 기억에 남은 미련이 있었나 봅니다.

 

언제쯤에나 도사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