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바다angelo 2011. 5. 12. 16:40

 

청주 상당산성

 

- 둘레가 4.2km -

 

수동 성바오로 서원에서 청주지역 성바오로수도회 협력자 모임을 마무리 하고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시작되는

2011년 3월 28일 월요일 오후 두 시

상당산성을 마주한다.

산성 입구, 드넓은 잔디밭

4월이 오면 푸르러지겠지...

 

 

둘레 4,200미터 그 길을 시작한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길', 길을 참 좋아하세요."

 

 

그랬군요.

그러고보니 휘어진 길, 곧은 길, 끝이 없는 길, 막다른 길. 넓은 길, 좁은 길, 꽃길, 오르막 길, 내리막 길 등등

참 많은 길을 걸었고

많은 길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었네요.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길입니다.

산성 길은 휘 굽어져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굽고 왼쪽으로 굽고......

 

 

우리네 인생을 길이라고 많이들 표현하지요.

제가 길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직 삶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일까요?

숙제를 하다 막혀 답답한 가슴 안고 뱅글뱅글 맴을 돌고 있습니다.

 

 

오늘도 길을 걷습니다.

저기 저 모퉁이, 빛이 있는 모퉁이에 다다르면

막혔던 숙제 한 문제 풀 수 있을까요?

 

 

수도자, 수사라고 이름 뒤에 수식어, 신원이 붙어 있는 나

지금껏 걸어왔던 30년의 시간을 뒤돌아 봅니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고

또 심하게 꺾여 있어

겨우 한 모퉁이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사는 게 다 죄지요."

어르신들의 그 말에 처음에는 할 말이 참 많았었지요.

 

 

뒤돌아 본 나의 길에는

겹겹이 쌓인 죄,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죄,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많은 죄가 있습니다.

 

 

너무 서둘러 고백하는 것일까요?

"사는 게 다 죄지요."

헛헛한 웃음 하늘로 흐른다.

 

 

저기 저곳에 이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앞서 가는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

뒤따라오는 사람에 대한 무시와 비아냥

저기 저곳의 쓸모 없음을 언제쯤에나 깨치려는지요?

 

 

오르고 나면 또 내려서야 하건만

체면, 위신이라는 것 때문에 얼마나 소소한 거짓과 가면을 쓰고 살았을까요?

 

 

굽어진 마음 길,

자꾸만 좁아지는 마음 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될 것을

한 박자 쉬었다 가면 될 것을......

 

 

그래, 어쩔 수 없는 삶의 한계들 앞에서

주눅들지 말자.

내 인생 길은 무조건 곧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인생, 길처럼 굽어져 있고

휘어져 있는데

죄의 발자국에 짓눌리지 말자.

 

 

 

"오, 복된 랏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부활의 밤, 우리는 큰 기쁨과 함께 노래 불렀습니다.

기억하자.

내가 죄를 이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죄를 이기셨다는 것을,

죄를 이기신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들 삶의 길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마주하고 걷습니다.

뿌리 채 뽑아 버린 것들,

뿌리는 뽑지 못한 채 둥치만 잘라 버린 것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거듭거듭 반복되며 내 영혼 안에 깊은 심지를 박고 있는

우리의 죄들을 마주하고 걷습니다.

 

 

희망했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고

깊은 심연의 절망을 안고

고향 엠마오로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길을 걷던 사람들처럼

저 또한 옹졸하게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보듬어 안고 걷고 계십니다.

나의 하느님께서 저를 보듬어 안고 걷고 계십니다.

 

 

 

지금껏 혼자 잘난 척 길을 걸었습니다.

냄비에 물끓듯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갔습니다.

그래서 죄의 깊은 절망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내가 죄를 이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죄를 이기셨고

우리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심을 기억하겠습니다.

 

 

 

눈 앞에 있는 욕심에 빠져

길을 잃지 않고

여유와 믿음, 편안한 마음으로

저기 저 하느님의 나라를 넓고 깊게 바라보며 걷고 싶습니다.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 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또 이런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성인식 절차 중에

창 하나 들고 혼자서 맹수 우글거리는 밀림에서 밤샘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몰려오게 하는 칠흙같은 어두움과 맹수 울음소리

...

아들 모르게 아버지,

아들 곁에서 밤샘을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제가 하루를 사는 것을 힘들어 할 때,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있을 때

나의 등 뒤에서, 이 복음 성가를 처음 들었고

혼자서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렸습니다.

 

 

주님, 어디까지 가시렵니까?

이제 날도 저물어 갑니다.

저와 함께 쉬었다 가시지요?

제 발도 씻어주시렵니까?

당신 생명의 빵도 나누어 주시구요.

 

 

살짝 굽어진 길이 예쁘지요.

울퉁불퉁한 길이 재미있지요.

누군가가 앞서간 길이라 마음 평안하지요.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나와 동행하시는 하느님을 잊지 말자.

자유와 해방이 있는 가나안 땅을 향한 길,

홍해 바다 가로지르는 길,

파스카, 부활의 길을 걷자.

 

 

 

청주 수동 성당

 

순례자의 노래 한번 불러보실래요?

가톨릭 성가 463번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외로움 속의 한 순례자
찬란한 꿈마저 말 없이 사라지고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나뭇잎 바람이 부는대로 가네
잔잔한 바람아 살며시 불어다오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들의 꽃 피었다 사라져가는 것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는 세상을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언제나 주님을 그리는가 보다
영원한 고향을 찾고 있는 사람들 언젠가 만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