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어 길을 걷다/제주 올레길

제주 올레 4코스 하나

하늘바다angelo 2010. 12. 12. 23:16

 

제주 올레 4코스 하나

-표선 당케포구에서 망오름까지-

 

 



 

 

현재 시간은 2010년 10월 7일 오전 8시 55분

비행기는 구름으로 덮힌 한라산 정상을 곁을 지난다.

잠시 후 한 시간 여의 비행으로 지친 날개는 제주 공항에 사뿐히 내려 앉을 것이다.

 

 

제주에 도착한 뒤 벌써 두 시간이 지난 열한시 십분

터미널에서 푸짐하게 밥을 차려 먹은 덕에 예상한 시간 보다 좀 뒤쳐진 듯하다.

시작점의 올레 안내소에서 패스포드에 도장을 찍을 때 "좀 늦었네요. 서두르셔야 겠습니다."라는 말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지난달 3코스를 마무리하며 만났던 표선해수욕장의 그 감흥을 다시 느낄 사이도 없이 23Km

올레 코스 중 가장 긴 길을 시작한다.

 

 

하늘과 바다가 서로 다르지 않다.

바다는 하늘을 품고 하늘은 바다를 품는다.

구름은 파도가 되고 바위가 된다.

파도와 바위는 하늘을 나는 구름이 된다.

 

곧은 길은 귀영구석 길이 아니다.

갯바위로 애두른 올레길을 밟으면서

우리들 삶이 닮아온 것이다.

......

와르르 와르르

우울증을 털어내고 있다.

 

 

놀며 쉬며 걷는 길이기에 그 길이 멀다해도 투정은 없다.

소나무는 바람을 쉬게 하고

지나는 올레꾼 또한 멈추어 세운다.

 

 

길은 뚫려 있다.

한라산 꼭대기까지

하늘 끝까지 뚫려 있다.

구름으로 가려진 한라산 꼭대기에는 야곱의 사다리가 있고

굵은 동아줄이 길을 걷는 이들을 발 내딛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뒤 돌아본 길은, 지나온 길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앞서간 사람의 기억으로 또 다른 기다림을 채우고 있다.

많은 인연들, 만나고 헤어지고 아쉽고 시원하고 그리운 인연들

지금의 인연은 어떤 기억이 될까?

 

 

하천과 만나는 바다의 앞 부분이 가느다랗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가는개

시간 반 열심히 걸었다. '출발이 늦었다'라는 말에 취해 평소보다 바쁘게 걸었다.

여기서 배낭을 채울까? 조금 더 가서 채우지 뭐,

아침도 든든히 추어탕으로 채웠으니 조금 더 가서 채우자.

 

 

바닷가에서 만나는 빠지지 않는 풍경, 낚시꾼!

인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유혹!!!???

 

 

빨래 마저 하늘로 물든다.

하나는 충분히, 하나는 반쯤, 마지막 하나는 이제 방금 시작했다.

 

 

토산바다산책로,

지나는 올레꾼들 멈추지 않을 수 없다.

확트인 바다 앞에 서면 몸과 마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작은 것으로 멋을 부린 사람은 한순간 시선을 유혹할 수 있겠지만

확트인 사람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바위 꼭대기에 실낱같은 생명이 자란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마태12,20)

주님의 보살핌을 증언하고 있는 것일까?

 

 

숲길 사이에 틈이 있기에...

틈 사이로 보기

괜히 얼굴 붉어진다.

 

 

귤이 익는다.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귤이 익는다.

곧 수확의 때가 오겠지요.

제게도 슬슬 걱정이 익어가고 있다.

배낭 속에는 이것 저것 많은 것이 들어있지만

정작 먹을 것이라곤 달랑 반 리터 짜리 물 한병 뿐이다.

조금 더 가서를 반복하다 결국은 ...

아무리 둘러보아도 먹거리를 구할 곳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올레꾼을 만나지도 못했다.

 

 

지친 발걸음, 타는 목을 쉬어갈 쉼터

사람들이 남긴 흔적은 오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을 보여준다.

처음이다. 올레길에서 올레꾼을 만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혼자의 길을 좋아해 혼자 걷지만 아쉽다.

고픈 배를 허리 띠로 조여 맨다.

 

 

 

망오름 오르는 길

고픈 배로 만난 길이라 가파르게만 느껴진다.

오름을 넘어가면 먹거리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힘을 낸다.

아자!

 

 

배가 고파 창자가 꼬인 상태라

요상하게 뻗은 나무를 만난 느낌은

"너도 헐벗었구나!"

얼마나 너의 삶이 고달팠길래!

마음이 짠하다.

 

 

망오름 정상에는 예전에 나는 봉수대였소 라고 말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

기억에 대한 존중으로 얕은 울타리가 처져 있다.

뻥 뚫린 하늘만이 온전히 너를 보는구나

우리의 존재를, 우리의 마음을, 우리 삶의 역사를

온전히 보시는 하느님께서 계심을 기억하자.

 

먹거리를 어디쯤에서 구할 수 있을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너희끼리 수근거리느냐?"

그제야 그들은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가르침을

조심하라는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오천 명과 사천 명도 먹이셨는데

나 하나 쯤이야....!

 

 

망오름 정상에 서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의 보살피심을 기억하며

아끼고 아꼈던 물을 벌컥 벌컥... 그러다 또 다시 혹시나 해서 조금은 남겨 둔다.

아, 이 믿음이 없는 사람아!

 

올레 4코스 다음편을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은 여기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