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바다angelo 2010. 4. 30. 17:21

 

제주 올레 10코스(I)

- 화순항에서 모슬포까지 -

 

 

 4월 8일, 9코스가 끝나고 10코스를 시작한다.

약간 허기가 진다. 오후 1시를 넘긴 시간이다.

화순항 선주협회 사무실은 문이 굳게 잠겨 있다.

패스포드에 스탬프를 찍지 못해 아쉽지만 또 길을 떠난다.

 

 

화순 해수욕장, 식당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마음까진 도달하지 못한다.

혼자 걷는 이에게 안내판은 말없이 웃음을 건내주는 좋은 벗이다.

"친구야, 이제 시작이다. 힘내!" 그렇게 소리없는 말을 전한다.

눈웃음으로 답을 대신한다.

 

 

 

화순해수욕장,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모래는 수많은 발자국을, 그 흔적을 받아들이며 한사람 또 한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시간과 바람, 또 다른 흔적이 더해지면 모래는 인연의 흔적을 기억으로 몽땅 끌어안는다.

품이 참 넓다.

 

 

바람은 모래의 기억을 싣고와 이곳 퇴적암 지역에 한겹 한겹 쌓아 올린다.

부딪혀 오는 파도와 인연의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서로 나누기 위해서...

나의 기도는 어디에 있는가?

 

 

인연의 사람을 위한 모래와 바람과 파도의 기도는 나무로, 잎으로, 꽃으로 피어오른다.

사람을, 인연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이 우주 어디에서나 기적으로, 사랑으로 우리들 사이에 뿌리를 내린다.

 

 

저어기 산방산이 한걸음으로 달려와 넓은 품을 내민다.

누이 한라산에게 배운 은하수를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내민다.

 

 

 인연, 그 모든 인연에는 아픔들이, 나누어야 할 수많은 아픔들이 있다.

인연이 내려 놓은 아픔들 한알 한알이 모여 바위가 되고

함께 흘린 눈물은 파도가 된다.

너를 위한 나의 위로는 이끼가 되어 너의 아픔을 감싼다.

 

 

주상절리,

모래, 바람, 파도, 이끼...

인연과 기도는 너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영원한 사랑이 있음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라고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비장한 각오, 강인한 의지, 굳건한 믿음....

하지만 부드러운 엄마품을, 연민을 잊지 말아야 할터...!

 

 

엄마의 품, 따뜻한 연민은 노오란 유채꽃입니다.

내 안에는 꽃이 피었습니까?

저 멀리 지금은 아득하니 보이는 형제섬,

내 안에 꽃이 피면 거리는 더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맑고, 이렇게 예쁜 우리들의 사랑과 인연, 기도가 있으니

우리의 길은 십자가의 길, 고통의 길이지만 하늘을 향한, 영원을 향한 길이겠지요.

 

 

산방산 줄기를 타고 용머리가 바닷물을 머금는다.

바람이 만들어준 사구, 모래 언덕이 조금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게 하고

소나무와 온갖 생명을 품을 수 있게 한다.

 

 

한 젊은 여인네가 앞서 지나간다.

가뿐한 발걸음으로 앞서 지나간다.

혼자의 길임에도 거침없이 지나간다.

얼굴 한번 볼 틈 없이 빨리도 지나간다.

섭섭하다.

혹 투박한 아저씨였다면 섭섭했을까?

 

 

섭섭한 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나무 한 그루 홀로 가만히 서 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선 나무는 나를 먼저 지나가게 한다.

예쁜 얼굴 빤히 쳐다보라고, 잘 보고 가라고

앞, 뒤, 옆 그 어느 곳에도 얼굴 가리개를 두지 않았다.

 

 

학생들이 단체 여행을 왔나보다.

왁자지껄, 삼삼오오 삼방산 눈 아래에서 춤을 춘다.

아직은, 아직은 누군가가 손잡아 주고, 이끌어 주고, 앞서 가야 하지만

그들의 춤은 풋풋하다.

그들의 춤은 나 또한 덩달아 춤을 추게 한다.

 

 

앞을 보고 걸어야 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본다.

삼방산과 용머리 그리고 아스라히 한라산을 자꾸 돌아본다.

 

 

힐끗힐끗 거리지 말고 마음 편히 뒤돌아보라고

형제섬 그 옆에 자리 하나 내어줍니다.

참았던 담배 한모금으로 길 한켠에 멈추었습니다.

 

 

멀리 저 멀리의 풍경은 그대로 있습니다.

가까이 가까이 내 발 아래의 풍경은 조금 전과는 또 다릅니다.

 

 

사랑은 그대로 있는데,

인연은 그대로 있는데,

우리의 기도는 그대로 있는데

작은 움직임에도 내 느낌과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흔들립니다.

"아, 믿음이 없는 사람아!" 예수님의 말씀이 발 아래 바닥을 타고  들려옵니다.

 

 

또 돌아본다

 

 

한번은 옆을 본다.

 

 

또 또 돌아본다. 

 

 

앞을 봅니다.

송악산이, 9코스를 시작할 때는 저 멀리 가물거리는 그 무엇이었는데

이제는 송악산입니다.

 

 

저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따뜻한 마음이 저기에서 나를 반길 것 같다.

오십줄 낮선 나그네가 들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길 위의 마을과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송악산 저 모퉁이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루종일 저 모퉁이를 보고 걸었지만

모퉁이 저 너머까지는 볼 수 없었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건만....

그럼 송악사가 있으려나?

 

 

 송악산에 올라 한라산 아래

저기 저기쯤에서 오늘 아침 길을 떠났는데.....

모퉁이까지 왔다.

산모퉁이 뒤가 보인다.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